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초록 무늬, 상처가 힘이다내면의 소리 2018. 11. 12. 00:20
친구가 찍어준 芝草
초록의 무늬
이선미
누가 다녀갔을까
연둣빛 나뭇잎에 새겨진 상형문자
쓰다 지운 흔적의 필체가 둥글다
은밀한 식탐에
숲은 얼마나 진저리를 쳤을까
잎맥이 끊어진 자리마다
어느 미물의 한 끼 식사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
오월의 빗방울이 찢어진 페이지를 읽고 또 읽는다
구멍으로 모음 하나가 또르르 구른다
이가 빠진 잎사귀들의 안간힘,
상처가 힘이다
잎사귀를 닮은 노모의 낡은 팬티
빨랫줄 집게가 늘어진 허리를 물고 있다
햇빛에 드러난 구멍들
본래의 문양인 듯 태연하다
내 옆구리 어디쯤 접혀있는 얼룩들
그때 온몸으로 진물을 흘렸다
가만히 꺼내보면
상처위에 밀어 올린 꽃이 더 향기로웠다
상처도 아물면 초록의 무늬가 되었다'내면의 소리' 카테고리의 다른 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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